VOW Community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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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8/2026

2026년 7월 18일 토요일
에스겔 26:1-21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2절)

타인의 망함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회사에서 잘리면 그 빈자리로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누군가가 승진에서 밀리면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승진하게 됩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런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타인의 망함이 나의 유익이 됨을 기뻐하는 자들이 있고, 타인의 망함을 기대하고 바라고 만들어서 나의 유익을 취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언제나, 모든 이가 다 잘되는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컨대 모든 팀이 다 월드컵을 우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너도 잘되고 나도 잘되면 좋습니다. 그러나 어그러진 세상은 그렇게 완벽하게 선한 일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불이익이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이런 일들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망함을 기뻐하고, 그것을 나의 유익 삼고, 나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의 불이익을 기대하는 태도는 엄연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두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황폐해졌으니 이제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이 태도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로를 향한 엄중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두로가 망할 때 그럼 주변 국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국가들도 또 두로가 실수했던 것처럼 "그들이 망했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해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되기를,
"그들이 너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항해자가 살았던 유명한 성읍이여 너와 너의 주민이 바다 가운데에 있어 견고하였도다 해변의 모든 주민을 두렵게 하였더니 어찌 그리 멸망하였는고"(17절)

쾌재가 아니라 적어도 '슬픈 노래'를 불러줄 정도의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게 유익이 되는 순간을 만났을 때 한편에 어려움을 당했을 이웃을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세심함과 따스함, 그리고 성숙한 매너를 가짐이 필요합니다.

07/17/2026

2026년 7월 17일 금요일
오늘도 주님 생각
에스겔 25:12-17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은 지극히 본능적입니다.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을 갚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만히 보면 피해자가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시는 기록이 많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갚으면 그것은 복수이지만,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시면 그것은 공의의 실현이 됩니다.

성경은 원수를 갚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원수를 하나님의 공의의 손에 맡기라고 말합니다. 복수는 나 자신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에돔을 생각해 보십시오. 에돔의 입장에서는 유다가 역사적으로 원수입니다. 그러니 복수하는 것이 당연한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수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공의의 손을 들어 그들을 멸하셨습니다. 많은 경우 복수하는 피해자는 결국 또 다른 가해자가 됩니다.

원수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본능에 압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미움의 감정과 폭발하는 폭력성에 압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기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입니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이 다윗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억울한 순간에도 원수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겨 드렸습니다. 자신이 도망할 때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를 다시 만날 때도, 그는 개인적으로 복수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정의를 믿고 맡겼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사탄 하나로 충분합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복수하기 시작할 때, 우리 자신도 함께 파괴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07/15/2026

2026년 7월 15일 수요일
오늘도 주님 생각
시편 118:8-29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2-23절)

시편 기자의 이 기록은 후에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역사를 설명하는 데 인용되곤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용을 따르자면 건축자들로 상징되는 유대인들과 바리새인 등 모든 이들이 예수를 버렸으나, 그렇게 '버린 돌'이 된 그리스도는 결국 구원의 '머릿돌'이 되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본 자나 들은 자 모두에게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버려진 돌'은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달랐습니다. '버려짐'이 예수님을 막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기어코 가장 중요한 머릿돌이 되셨고, 가장 중요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쯤 되니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버려질 때 실망하고 좌절하는 인생이 많습니다. 거기서 멈추는 인생이 많습니다. 길이 막히고 고단할 때 쉽게 탭을 쳐버리고 항복하는 인생도 많습니다.

예컨대 이런 인생들은 출애굽을 시작하고 홍해를 만나면 탭 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광야에 들어갔는데 물이 안 나오면 탭 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바울처럼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변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교회가 밀어내면 탭 치고 돌아섭니다. 핍박받고 감옥에 갇히면, 아니 갇히기도 전에 탭 치고 돌아섭니다. 그러나 -조금은 과도한 접근이요 해석일 수 있지만- 바울이 감옥으로 버려(?)졌기 때문에 간수와 그 가족을 구원하는 '머릿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버림받음은 끝이 아니라 십자가의 시작이었습니다.

환경에 압도당하는 신앙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사는 인생이 되겠습니까?

맞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환경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돌파할 때 이를 '기이한 일'로 여길 것입니다. 분명히 세상에서 버려진 돌 같은데 머릿돌로 컴백할 때 이를 '기이한 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전혀 기이한 일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버려진 돌이었으나 머릿돌 삼으셔서 구원의 역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도 다름없이 필요한 곳에 '머릿돌' 삼아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실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버려진 예수'가 아닌 '구원자 예수'를 믿는 것처럼, 환경에 지는 신앙을 버리고 승리하게 하시는 선하신 섭리의 하나님을 믿읍시다.

07/10/2026

071025 오늘도 주님 생각
시편114:1-8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5절)

알면 알수록 거리감이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교육전도사로 일하고 있을 때 그 교회를 담당하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나는 교회 사무실에서 매일 그 목사님과 농담따먹기를 하고, 격이 없이 인사를 나누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그 교회를 담당하던 목사님이 한국 본교회로 부름받아서 다시 복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때 돌아가시는 목사님이 나에게 "같이 가자!"라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나는 한국에 있는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근 첫날 나는 본 적도 없는 큰 교회에 약간 위축된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가는데 때마침 문에서 나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셨던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평소처럼 주먹을 맞대며 편하게 인사를 나누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나는 너무나 놀라운 풍경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 안에 앉아 있던 30명이 넘는 교역자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군인들처럼 나와 주먹으로 인사를 나누고, 농담따먹기를 하던 그 목사님께 반절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ㅋㅋㅋ 그렇습니다! 세상적으로 보자면 그분은 진짜 높은(?) 분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없던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그분과 나의 위치를 자각하는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후로 주먹으로 인사해오는 그 목사님께 다시는 주먹을 대며 인사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다는 갈라지고(홍해 사건), 요단은 물러갔습니다(요단강 도하 사건). 나는 이 장면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격의 차이를 실감하게 됩니다. 마치 제자들이 파도마저 잠잠케 하시는 예수를 보고 놀라는 장면과도 같습니다.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분의 높이와 나의 낮음을 생각해 보면 감히 같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내가 올려다보아도 한참을 올려다 보아야 했던 그 목사님과 나의 격의 차이랑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차이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홍해를 갈라 주셨고, 우리 인생에 요단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위대한 그분이 주먹을 내밀며 항상 먼저 인사해 주시고, 격이 없이 다가와 주시고, 안아 주시고, 도와주시고, 함께 거해 주신 것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전율이 일고도 남을 사랑입니다. '기적' 속에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와 찬양이 마를 수 없습니다. 초격차를 무시하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히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 형용할 수 없는 나의 짧은 언어가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를 도우십니다. 나를 위해 기적을 베푸십니다. 놀라운 일,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감격과 감사와 찬양을 멈출 수 없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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