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ady Coffee
15/02/2026
머신 없는 카페를 성공시킨 뒤,
저에게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로스터리 카페도 직원 없이 가능합니까?”
클라이언트는 로스팅을 할 줄 몰랐고,
전문 로스터를 채용할 인건비 여력도 없었습니다.
보통이라면
“그럼 로스터리는 포기하시죠.”
라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한 번 만들어본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최초의 시도, ‘로스팅 프로파일 구독’
2018년 무렵,
저는 로스팅 머신 제조사 스트롱홀드(Stronghold) 와 협업해 국내 최초로 하나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름하여
‘로스팅 프로파일 구독 서비스’
개념은 단순했습니다.
생두는 저희에게서 구매한다.
머신에는 제가 설계한 로스팅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다.
주문 수량에 맞춰 로스팅 ‘횟수’를 원격으로 전송한다.
매장에서는 생두를 붓고 ‘시작’ 버튼만 누른다.
서울에서 제주도 머신을 제어하는 IoT 구조.
지금은 구독서비스가 자동차에도 적용될만큼 익숙한 개념이지만,
2018년 당시에는 ‘구독’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기였습니다.
이 모델을 대규모 사업으로 확장하진 못했습니다.
시장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완성했습니다.
“누가 작동시켜도 같은 맛이 나오는 데이터.”
이 데이터는 단순 레시피가 아니라
열량, 상승곡선, 크랙 타이밍, 배출 시점까지 설계된
재현 가능한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지금 제 컨설팅의 핵심 엔진이 되었습니다.
로스터 없이 운영하는 로스터리 카페
이번 프로젝트에
그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했습니다.
“사장님, 로스팅 공부하지 마세요.”
“직원도 뽑지 마세요.”
설계된 데이터가 입력된 머신은
초보 사장님이 버튼만 눌러도
제가 볶은 것과 동일한 결과값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장님은 하루 종일 콩만 볶는 대신,
손님 응대와 매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대표님… 제가 볶았는데 왜 맛있죠?”
우리는 ‘노동’을 제거한 게 아니라 ‘불확실성’을 제거했습니다
로스터리 카페는
주인이 하루 종일 콩만 볶다가 끝난다는 편견.
우리는 그 구조를
감(感)이 아니라 데이터로 바꿨습니다.
로스팅 인건비 0원.
로스팅 스트레스 0%.
하지만 원두 판매 수익은 그대로.
그래서 저는
“로스터 채용하지 마세요.”
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말로만 하는 컨설턴트가 아니라,
직접 시스템을 만들어 본 사람이니까요.
다음화 예고 : 내 손을 거쳐간 매장들은 아직까지 잘 되나?
24/01/2026
울산 스테디커피에서 쫓겨나듯 나온 뒤,
저를 믿고 원두를 쓰고 있는 ‘납품처’과의 약속만은 지켜야 했습니다.
울산 스테디커피 쪽에 비굴하지만 말해봤습니다.
“그럼… 로스팅이라도 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안된다” (단호박인줄)
어떻게든 납품은 막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겐 로스팅 머신이 없었습니다.
거래처 사장님들께
“죄송하지만 다른 원두 쓰세요”라고 말하는 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친구가 운영하는 ‘나너우리작업장()’에 OEM을 부탁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멋진 회사였죠.
비록 제 코가 석 자였지만, 기부하는 마음으로 생산을 맡겼습니다.
(ADHD답게 멘붕이 와서 신세한탄하다가
충동적으로 질러버린 것도 있었습니다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조금 가벼웠습니다.)
급한 불은 껐고,
저는 다시 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울산을 미친 듯이 뒤졌습니다.
폐공장, 버려진 양식장…
마음에 드는 땅이 보이면 무작정 등기부등본을 떼서
땅 주인을 찾아 손편지를 썼습니다.
“여기를 핫플레이스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제발 연락 주세요.”
몇 개월을 매달렸지만,
성사된 계약은 0건.
통장은 ‘텅장’이 되어갔고,
이제는 OEM 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시, 제가 직접 볶아야 했습니다.
그때 대구의 랜드마크 ‘롤러커피’에서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졌습니다.
“형님~ 와서 볶아요~”
그날부터 저는
‘대구로 출퇴근하는 로스터’가 되었습니다.
전기로만 로스팅하다가
가스 로스팅 머신인 디드릭으로 볶아보기도 하고,
롤러–울산–롤러–울산–롤러–울산……
문제는,
빌어먹을 제 차였습니다.
울산 내려올 때,
이제 여기저기 안 다니고
울산에 처박혀서 은둔생활이나 하려고
육중한 가솔린 SUV, 싼타페 TM을 샀습니다.
이게 제 인생 또 하나의 실수였습니다.
처박혀 있기는커녕
매일 고속도로를 달리는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연비는 그야말로 똥망.
3년도 안 돼 계기판엔 120,000km가 찍혔습니다.
(거의 택시 수준…)
기름 먹는 하마를 끌고
매일 장거리를 왕복하는 상황.
상식적으로는
차를 버려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늘이 도왔던 걸까요.
두 가지 천운이 따랐습니다.
첫째, 기적의 거리 ‘95km’
집이 경주 외동 바로 옆인 울산 북구 신천동이라
대구까지 딱 95km가 찍혔습니다.
편도 100km가 넘었다면 심리적으로 무너졌을 겁니다.
“그래도 두 자릿수네?
다닐 만하네?”
이 숫자 하나가
저를 매일 아침 차에 태웠습니다.
둘째, 휘발유 1,200원
국제 유가 폭락 시기,
주유소 가격표를 볼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와… 기름값 비쌌으면
난 벌써 파산이다.”
말도 안 되는 타이밍 덕분에
연비 최악의 차를 끌고도
저는 버틸 수 있었습니다.
길 위에서 버티며,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매장도 없는 저를 믿어준
거래처 사장님들이야말로
제 ‘생명의 은인’이었으니까요.
(물론 사장님들은
저의 이런 스토리를 모르셨겠지만요. ㅋ)
그래서 감성에 젖어
또 하나의 바보 같은 약속을 해버립니다.
“그때 거래해주신 사장님들께는
평생 원두 가격 안 올리겠습니다.
무조건 동결입니다.”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그때,
대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대표님,
카페 하고 싶어 하는 분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실래요?”
다음화 예고 EP.17 지금보다만 더 벌게 해주세요
21/01/2026
언젠가 사주를 보러 갔더니 그러더군요.
“당신은 마흔셋 전까진 큰돈 못 만져.
다 스쳐 지나갈 거야.”
전 이 점괘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울산 오픈 첫 달, 목표 매출이 찍히는 걸 보고 생각했죠. "사주따위 역시 미신이네..."
매일 매출은 신고가를 갱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큰 CGV 건물 안에서 영화관보다 우리 카페 매출이 더 높았고, 다른 지역 CGV에서도 입점 문의가 들어올 정도로 핫하디 핫했으니까요.
“그래, 이제 확실히 알겠다. 잘되는 카페에는 분명한 프로세스가 있어!”
자신만만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쎄한 느낌’이 들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그 느낌은 제 실수를 덮으려는 핑계였는지도 모릅니다.
1. 무계약(The Fatal Error)
시행사와 그어떤 계약서도 쓰지를 않았습니다.
당시엔 그들이 저를 구해준 ‘구세주’처럼 보였거든요. "나중에 쓰자"는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매출이 폭발할수록 제 입지는 좁아졌고, 법적으로 저는 이 매장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2. 대표에서 ‘팀장’으로 (Loss of Control)
어느 순간부터 저는 ‘대표’가 아니라 ‘노 팀장’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ADHD 특유의 할 말 못 하는 성격 탓에, "노대표, 앞으로 팀장으로 불러도 게얂제?"라는 말에
속마음: 미친, 내가 왜 팀장이야
겉으론: "네 뭐… 실무 총괄하니 그러시죠..." 허허
이렇게 넘긴 게 화근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주인이 알바생보다 못한 ‘팀장’이 되어 눈치를 보는 상황. 자동화를 도입해 놓고도 인건비는 줄지 않았고, 베이커리와 커피 파트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습니다.
3. 프리미엄 카페의 붕괴 (feat. 수박식빵)
저는 ‘프리미엄’을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파티셰님은 알록달록 과일 빵, 심지어 ‘수박식빵’까지 내놓았습니다. (EP.15-3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 브랜딩에 과일 떡칠된 빵은 없었습니다.)
사실, 예견된 참사였습니다. 오픈 일주일 전에야 파티셰 형님의 한쪽 눈이 실명임을 알고 부랴부랴 주방 조명을 전구색에서 화이트로 밝게 바꿨지만, 소통은 이미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제 책상 뒤에 붙여둔
'파티셰의 실력이 검증되지 않음'이라는 메모...
그걸 형님이 보신 이후로 말이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포르쉐나 레인지로버를 타고 온 손님들은 "커피는 괜찮은데 빵이 왜 이래?"라며 외면했고, 빵 손님들은 "커피는 왜 이렇게 비싸?"라며 나갔습니다.
브랜드의 결이 찢어지자, 매출도 귀신같이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4. 화룡점정, COVID-19
내부에서 곪아가던 중, 외부에서 핵폭탄이 떨어졌습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계약서도 없고, 발언권도 없고, 전염병까지.
월 1.5억의 신기루는 순식간에 증발했습니다.
"어딜 가도 마흔 전엔 안 된다더니..." 오픈 한 달 만에 전염병 창궐, 전개 방식도 참 신박 그 잡채였습니다.
솔직히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아니면 트루먼 쇼라도 찍고 있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습니다.
매출이 떨어지자 시행사측의 압박은 거세졌고, 급기야 샘플 원두를 챙기는 저를 CCTV로 보고는 "횡령 아니냐"며 좋은 말로할때 나가라고 하더군요.
뒤통수가 얼얼했습니다.
그렇게 2020년 6월.
스테디커피의 주인이 실직을 해버리는 웃픈 일이 벌어졌습니다. 울산점은 저 대신 '가족 경영'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나온 뒤 들려온 소식은 처참했습니다.
유니폼은 녹색, 저녁엔 맥주 판매, 로스팅 룸엔 정체 모를 냉장고가 들어가서 로스팅룸인줄도 모르게 바뀌었고... 로고 옆엔 웬 빵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진짜만을 취급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심어둔 식물들은 하나둘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의도된 브랜딩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마치 방사선에 피폭된 것처럼 제 브랜드의 DNA가 하나씩 망가져 갔습니다.
똑똑함(Smart) → 멍청해진 매장
친절함(Friendly) → 불친절한 매장
세련됨(Sophisticated) → 촌스러운 매장
간판은 내 것인데, 내 매장이라고 말도 못 하는 상황. "울산 스테디커피는 왜 그 모양이냐"는 소리라도 들릴까봐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저에게는 스테디커피 울산점의 끝이었습니다.
다음화 예고 EP.16 카페 컨설팅의 시작
12/01/2026
세상일 참 모릅니다. 판을 벌리는 과정에서, 딱 하나 '진짜'를 연결해 둔 게 있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통해 울산 CGV 건물의 시행사와 연결이 된 겁니다.
사실 중동 뒷골목으로 쫓겨가기 전, 시행사 측에서 경대북문 매장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인연이 닿아 제가 울산으로 몇 번 내려가 미팅을 가졌었죠.
하지만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고,. 화려한 제안서?
부풀려진 미래 가치? 그런 건 더 이상 제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박'을 했습니다.
시행사 대표님께 카톡으로 현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로 한 겁니다.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가진 건 로스팅 기술과 커피에 대한 집착, 그리고 이 몸 하나뿐입니다. 지금 제 상황이 이렇습니다. 구구절절"
전송 버튼을 누르고 숨을 죽였습니다. 손절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
하지만 답장은?
"그럼, 울산으로 오시죠."
화려한 껍데기는 다 벗겨지고 상처투성이인 알맹이만 남은 저를,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여기가 지옥인가 했는데, 떨어지면서 보니 저도 모르게 비상구 문이 열려있더군요. 그것도 '울산 CGV'라는 괜찮은 무대로 통하는 문을요.
대구에서의 실패, 가족에게 받은 상처, 뒷골목의 비참함...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저는 울산행 짐을 쌌습니다.
도망치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도전이었을까요? 확실한 건, 제 인생의 제3막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Next] 다음 화 예고 👉 이번엔 반드시 성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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